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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의 역사와 현주소,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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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는 1963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민국 군대 내의 비밀 사조직으로 활동했던 단체입니다. 이 글에서는 하나회의 역사와 구성원, 그리고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하나회란 무엇이고 왜 문제가 되었을까?

하나회는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등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군대 내의 비밀 사조직입니다.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군내 주요 요직을 독점하고,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1980년 5·17 쿠데타를 주도했습니다.

 

또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군부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하나회는 군의 정상적인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불법적인 세력을 키워가며,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침해했습니다.

 

이들은 비밀 점조직 방식으로 조직하고, 가입 시 복종을 맹세하고, 회원들에게 인사 특혜를 주었습니다. 하나회의 존재와 활동은 1973년 윤필용 사건과 1988년 하나회 숙청 사건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하나회 명단 핵심인물은 누구였을까요?

하나회의 핵심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두환: 하나회의 창립자이자 리더로, 보안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계엄사령관, 대통령 등을 역임했습니다.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를 주도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했습니다. 1996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입니다.

 

노태우: 하나회의 부리더로, 제9사단장,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합동참모부 차장, 대통령 등을 역임했습니다.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에 참여하고, 전두환의 후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995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입니다.

 

김복동: 하나회의 여성 멤버로, 육군사관학교 11기의 유일한 여성 졸업생이었습니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보안사령부 내 사과 등의 진급 담당 요직을 점거하고, 하나회의 인사 특혜를 조정했습니다. 1988년 하나회 숙청 사건에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으로서 하나회의 존재와 활동을 인정했으나, 처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입니다.

 

정호용: 하나회의 핵심 멤버로, 제30 경비단장, 제33경비단장, 제1공수특전여단장, 제3공수특전여단장, 제5공수특전여단장,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합동참모부 차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에 참여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했습니다. 1996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입니다.

 

백운택: 하나회의 핵심 멤버로, 제71방 위사단장, 제1공수특전여단장, 제3공수특전여단장, 제5공수특전여단장,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합동참모부 차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에 참여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했습니다. 1996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입니다.

하나회의 최근 동향은 어떻게 됐을까?

하나회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숙청으로 사실상 해체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일부 회원들이 사회적으로 활동하거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하나회의 최근 동향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2017년 5월, 전두환과 노태우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방문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대해 광주시민들은 분노하고, 전국적인 항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2018년 1월, 전두환과 노태우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두 전직 대통령은 재산을 은닉하거나 양도하면서 배상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하고, 정부는 재산 환수를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2019년 10월, 하나회의 여성 멤버였던 김복동 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이 사망했습니다. 그는 하나회의 인사 특혜를 조정했던 인물로, 1988년 하나회 숙청 사건에서 하나회의 존재와 활동을 인정했으나, 처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사망으로 하나회의 핵심 인물은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백운택 등 4명만 남았습니다.

 

2020년 5월, 하나회의 핵심 인물이었던 정호용 전 합참부 차장이 사망했습니다. 그는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에 참여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했습니다. 그의 사망으로 하나회의 핵심 인물은 전두환, 노태우, 백운택 등 3명만 남았습니다.

 

2021년 2월, 하나회의 부활이나 제2의 전성기라는 주장이 일부 언론에서 제기되었습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 관련 정책을 보좌했던 하나회 출신 인사들이 현재도 군 예비역단체의 핵심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회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이종구 성우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종친이자 친분이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인 김용기 전 유엔군사령부 수석대표는 하나회의 인사 특혜를 조정했던 김복동 전 인사참모부장의 동기였습니다. 이들은 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마무리

하나회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하고, 군의 정상적인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비밀 점조직 방식으로 조직한 단체입니다. 하나회의 존재와 활동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하나회는 1993년에 사실상 해체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일부 회원들이 사회적으로 활동하거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하나회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하나회의 핵심 인물들이 사망하거나 법적 처벌을 받는 등 몰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하나회의 부활이나 제2의 전성기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회 출신 인사들이 군 예비역단체에서 활동하고, 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잊지 말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회의 잔재를 청산하고, 군의 정상적인 인사 시스템을 유지하고, 군의 사기와 민주주의를 증진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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